맑은향기 1 2020. 1. 13. 14:09

늦저녁 / 박동미



숲이 수런대며 불 붙었네

가장 먼 곳의 나무잎부터

요플레처럼 발효되어

남자의 그것처럼

빛을 향해 힘껏 쏘아올린다

바람부는 날,

마음껏 그대 안고 싶었다

하느님이

구름이랑 바람과 놀고 있을 때

무딘 세월 속눈썹 아래로 밀려와

어둠 펼쳐놓고

내 삶 닮은 붉은 잎들

관능의 촉수 낮추고

잠시 숨 고르면,

붉어지는 알몸

은사시나무 아래 걸어 두고

새처럼 웅크리고 울어본다.



2010. 봄날에 깃들다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