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작품

개 밥그릇 {2021. 대구문학 10월 169호}

맑은향기 1 2021. 10. 8. 11:17

개 밥그릇  / 박동미 

 

 

살랑살랑 복실이

낯선 사람 오면 컹컹 짖으며 집도 잘 지킨다

찌그러진 양은 밥그릇에

먹다 남은 생선 가시 던져주면

꼬리 흔들며 깨끗이 먹어치운다

 

비 오면 빗물에 엎어진

개 밥그릇 발로 찼던 기억

흙에 범벅되어도

모욕 한 번 씻어준 적 없는 

선한 눈빛의 복실이 종일 빈 집 지키며

밥그릇 물고 돌다가

심심하면 발로 차고 놀았다

 

개 똥 치울 때마다 먹고 똥만 싼다고

때린 것 미안하다

할머니 개밥 꼭 챙겨 주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굶긴 것도 미안하다

 

 

평생 찌그러지고 볼품없는

구석에 내팽개친 밥그릇에

찬밥 한 덩어리 던져주는 것도

귀찮았던 지난날 함부로 대했던 복실이

오늘따라 보고 싶다

 

 

세상 살아보니 말 못 하는 짐승이라고

내 기분대로 밥 굶기고 때렸던 유년의 복실이

반갑다고 폴짝폴짝 뛰던 복실이 사과한다

 

 

풍진 세상

찬밥 같은 내 인생

너의 부재가

환한 달빛에 따끔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