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은 일찍 오더이다. 첩보 영화처럼 관광버스에 전화해서 얼음 구해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오라고 부탁 했더니 얼음 파는 곳이 없어 전날 김천에서 얼음 공수하고 6시에 구미 고속버스 진입로에서 접선해서 명품 족발을 받아 싣고 대구로 출발했다는 전화를 받고 안심했다. 방울 토마토 씻어 물기를 빼서 5킬로에 몇 개인지 일일이 헤아려 20킬로 계산기 두드려 인원수에 맞추어 14개씩 혼자 90개 봉지 만들고 나니 눈이 뱅뱅 도는 것 같고 현기증 났다. 봉지 달인 살짝 사표 내고 싶었다. 새벽 5시 기상해서 하루 치의 일용할 양식 준비해 놓고 가게 갔더니 열쇠를 안 가져와 아침부터 동동거렸다. 7시에 편집국장이 짐 실로와 88명 먹을 간식과 음료수, 맥주, 소주, 주스, 과일 등 이삿짐 수준이었다. 차를 뒤로 빼려고 해도 짐 때문에 안 보여 창문 내리고 얼굴 밖으로 내밀어 겨우겨우 차를 뒤로 뺐다. 오는 길에 김밥 찾았지만, 차에 공간이 없어 무릎 위에 낑낑대며 실었다. 사람도 짐이 되었다.
예술회관에서 짐을 내려 1호 차는 차에 싣고 나머지 짐은 드링크에 일일이 표시해서 동명 휴게소에서 2호 차로 보낼 예정이라 법원 앞에서 출발하는 2호 차는 음식을 하나도 안 싣고 맨입으로 동명까지 가게 되어 미안했다. 날씨 더워 냉장고에 보관해서 일찍 싣고 와야 해 두 군데 나누기가 어려웠다. 1호 차는 한규천 선생이 봉지 나누어주고 온종일 손발 맞추어 도와준 일등 공신이었다. 인원이 많아 준비해 간 봉지가 약간 부족했다. 인원 파악한다고 해도 변수가 생긴다. 1호 차는 예술회관에서 2호 차는 법원 앞에서 각각 출발하여 동명 휴게소에서 만나 서로 반갑게 인사 나누고 짐을 내리고 이름표 달고 88명이 팔팔하게 공기 좋고 물 맑은 영월로 go ~~
푸른 하늘의 구름 몇 점이 안부를 묻는다. 좋은 인연으로 함께 하는 문학 기행 며칠 전부터 가슴 설레며 기다렸다. 강원도는 길이 멀어 큰 맘 먹지 않으면 가보기 어려운 코스다. 우리네 세상살이 어려운 관문 통과하듯 꼬불꼬불한 길에서 차의 중심이 기울 때마다 원로 선생님을 많이 모시고 가기 때문에 조심조심 천천히 달렸다. 이팝나무가 눈꽃처럼 피어 한 시대가 역사의 이름으로 또 흘러가고 있는 듯 애틋한 마음도 함께 푸르렀다. 처음 와 본 강원도는 고향처럼 푸근했다. 긴 시간을 달려 김삿갓 문학관에 도착하여 방랑시인을 만나다.
첩첩 산골인 김삿갓 문학관은 조용한 산골에 원형 돔 형식의 고대 성지처럼 건축물이 삿갓 모양으로 단조롭게 설계되어 있었다. 김병연 (김삿갓 )은 안동 김씨 시조인 고려 개국공신 김선평의 후예로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1811년 민란의 선구 역할을 한 홍경래 난이 일어났을 당시 선천 부사였던 그의 조부 김익순은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고 부친은 남해로 귀양을 가고 김병연은 멸족의 화를 피해 황해도 곡산에서 숨어 살았다. 훗날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되었으나 세상 사람들의 괄시와 천대가 심하여 영월군 김삿갓면 어둔에 정착하였다. 김병연은 영월 동헌에서 실시한 백일장에 참가하여 장원했는데 이는 가산 군수 정시를 예찬하고 선천 방어사인 조부 김익순을 호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 후 어머니로부터 자신의 집안에 대한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했다는 자책감에 22세 때 노모와 처자식을 남겨둔 채 방랑의 길로 나갔다. 이때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삿갓을 쓰고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그의 시는 민중의 한과 설움을 해학적으로 읊으며 일세를 풍미하고 새로운 방식의 시 세계를 추구하며 파격적인 시작 활동으로 세계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김삿갓은 1863년 전라도 화순에서 5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 했고 3년 후 아들이 현재의 노루목으로 묘를 이장했다. 문학관에는 김병연 선생의 시대정신과 문화예술 혼과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있다. 문학관 옆에 김삿갓문학상 수상자의 시비가 있고 조용한 뜨락 위로 꽃 그림자 가득 드리워졌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예약해둔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강원도 특산물 곤드레 밥과 산나물로 착한 밥상을 마주하며 옥수수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문학관을 둘러보고 청령포로 발길을 돌렸다.
조선 6대 단종이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청령포로 유배됐던 곳에 나룻배를 타고 건너가다 물의 감옥이라 할 만큼 험준한 산이 있어 배를 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섬에서 두 달을 살다 큰 홍수로 범람하자 영월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겨 10월 24일 사약을 받았다. 단종의 슬픔을 아는 양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사람은 가고 600년 된 소나무가 단종의 억울함을 증언하고 있는 듯 애잔해 보였다.
오는 길에 경치 좋은 단양 휴게실에 내려 돗자리 깔고 구미에서 주문한 명품 족발과 시원한 구기자 막걸리 돌리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족발과 구기자 막걸리는 궁합이 환상이었다. 족발을 반만 내리고 갈 때 반은 차에서 먹을 예정이었는데 인기가 많아 금방 바닥나서 남은 반을 가져와 맛있게 먹으며 회포를 풀었다. 먼 길이라 서둘러 오느라 느긋하게 술 한잔할 시간이 필요했는데 타임이 딱 맞았다. 등산용 돗자리 100인용에 빙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날씨가 더워 시원한생수 80병과 마른안주를 더 구입해서 차에 올랐다.
편집국장은 애도 기간이라 손님 안 받고 직접 제조한 냉커피만 팔았다. 은은한 커피 향기 퍼져 나가자 순식간에 불티나게 팔렸다. 수입이 짭짭했을 거다. 나는 혼자 손님 받고 술 팔며 온몸으로 뛰었다. 어느새 군위 휴게실 도착해서 가락국수 한 그릇씩 비우고 아쉬움 남기며 해산했다. 하루가 짧기만 하다. 기획부터 연출 및 감독 총 지휘한 공영구 회장님 이하 집행부와 간사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 힘을 다한 한 편의 드라마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주인공을 더 빛나게 하려고 뒤에서 묵묵히 땀 흘리며 든든한 배경이 되어주는 간사들 늘 고맙고 감사하다
아름다운 동행으로 멋진 추억을 남긴 모든 선생님께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내년 문학 기행은 더 완벽하게 준비해서 편안하게 모실 것을 약속드리며, 혹시 부족하고 미미했던 부분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고 애정으로 바라봐 주십시오. 앞으로 더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내년에는 제가 2호 차에 탑승해서 기쁨조로 뛰겠습니다 그리고 냉커피 장사도 제가 하겠습니다 바쁜 일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한 선생님께도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애정 부탁드리며 좋은 인연 잊지 않겠습니다. 서울 출장 중에 바로 오신 박성규 선생 포함 문학기행 사상 차 두 대에 89명의 기록을 세우며 문학기행의 새 역사를 썼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 몇 번 해도 부족함이 있는듯 합니다 ~~
사랑해요 고마워요 감사해요
찬조해 주고 넘치도록 사랑 보내준 모든 선생님께 감사 인사올립니다
수석간사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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