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1집 봄날에 깃들다 ( 2010 )

후회하지 않는 삶 위하여

맑은향기 1 2020. 1. 13. 14:30

후회하지 않는 삶 위하여 / 박동미



거칠은 어머니 손 잡아 본 적 있나요

텅 빈 집 혼자 지키며

치매와 싸우고 있는 것 알고 있나요

날마다 자식들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나요

몇 정거장만 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용돈 아깝지 않게 듬뿍 안겨 드린 적 있나요

명절날 몇 푼 쥐어주고는

자식노릇 다 한 것처럼 생색만 내는 것 아닌지요

언제 옷 한 벌 사드린 적 있나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자식들 다 주고 야윈 몸 가누는

늙어버린 어머니 살펴 본 적 있나요


누렇게 닳아버린 사진첩

들려다보는 낙으로 사는 것 알고 있나요

다리 관절염에 시달리는 모습 궁금하기나 했나요

혼자 늙어가며 자식들에게 짐 될까봐

눈치 보는 부모 마음 헤아리기나 했나요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하고 있지는 않나요

살아서 잘해 드려야 한다고 잘 알고 있으면서

무심한 세월에 길들여 있지는 않나요


하루가 십년처럼 힘겹다는 것 눈여겨 살핀 적 있나요

건성으로 건강 어떠세요

한번 여쭤보면 자식 도리 다한 줄 아세요

알약 한 웅큼 입에 털어 넣고는

하릴없이 하늘만 훔쳐보는

껍질뿐인 기력 다한 노인네인 것 알고 있나요

아프다는 말 입에 달고 사십니다


그 나이 되면 고장날 때도 되었다고

핀잔만 해대지는 않았나요

힘 없고 기력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네라고 가볍게 여기진 않았나요

우리도 그렇게 늙어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세월 지나면 시간 없어지는데

오십이 되도록 어머니 신발 몇 문 신는지

속옷 사이즈 어떻게 되는지

머리염색 한 번 해드린 적 없고

어떤 반찬 좋아하는지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작은 마음의 여유만 있으면 되는데

세월 탓만 하지 않았는지요.


2010. 봄날에 깃들다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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