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2집 {푸른 시간에 갇혀} (2019)

보리밭

맑은향기 1 2020. 1. 15. 17:32

보리밭 / 박동미

 

 

 

푸른 보리밭에 젖은 맨발 밀어 넣고

환장하게 가렵고 차진 몸으로

여름 별자리 근처 바람끼리 비비며 운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눈 질끈 감은 황톳길 

구름 능선이 무릎에 누웠다

멍석 흔드는 소리에
가난한 여름, 보리술에 취한다

탯줄 감고 있는 콩잎 싹 틔우며 

죄수 같은 푸른 들판에 순례 마치고

세월없는 듯 앉아 있다

고즈넉한 생, 

꼿꼿이 세우던 등뼈 힘으로

아버지 갈라진 뒤꿈치 길 따라간다

얼마나 많은 날 몸부림쳤던가? 

거멓게 속 타들어 가면서

아버지 날갯죽지 낙관으로 찍혀 있다

연둣빛 풀 하나 똥 한 무더기 누고는

호박잎 촘촘히 뒤 닦고 갔다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땅 파던 아버지

달빛 환하게 당신 얼굴 겹쳐 보여

머쓱해서 주먹을 허공에 쑥 내밀었다

 

 

2019. 푸른 시간에 갇혀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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