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박동미
하룻밤 파노라마에서
얼어붙은 밤길 떠나올 때
먼 훗날 도착할 기억이
바람과 햇빛에 깎여
등허리 자꾸 허전하다
어린 별로 태어나
소통이 점점 멀어지는 듯
햇발 역류하는 한낮의 분화구
너덜너덜 지느러미 저으며 찾아가는 길
돌아보면 서로 날개 스치며
모든 그들은 나를 아는 듯하고
나는 그들을 알 듯 말 듯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
이승에서 거꾸로 가고 있는 듯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황혼의 바다 홀로 목관 쓰고
아득히 썰물과 밀물의 경계에서
눈에 피어나던 동백
앙상한 가슴뼈 사이로 바람 불어온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외딴섬 낯선 고인돌에 누워
(기억하나요)
텅 빈 가슴에 균열 깊어
명치 찌르는 파편들 온몸으로 진동한다
흘러가는 구름집은 나만의 것
꽃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어둠 펼쳐 놓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봄날의 약속 어기고 실성한 머리에
바람꽃 피었다
폐부 말리는 바람 밀려올 때면
젊은 나의 아버지 허물로 서서
금빛 아침 쪼아 먹는데
내 곁 떠난 그들의 속도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움 뼛골 검어지던 날
초록뱀 한 마리 나를 벗어 놓고
조용조용 사라진다
2019. 푸른 시간에 갇혀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