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2집 {푸른 시간에 갇혀} (2019)

아버지

맑은향기 1 2020. 1. 15. 17:39

아버지 / 박동미

 

 

하룻밤 파노라마에서

얼어붙은 밤길 떠나올 때

먼 훗날 도착할 기억이

바람과 햇빛에 깎여

등허리 자꾸 허전하다

어린 별로 태어나

소통이 점점 멀어지는 듯

햇발 역류하는 한낮의 분화구

너덜너덜 지느러미 저으며 찾아가는 길

돌아보면 서로 날개 스치며

모든 그들은 나를 아는 듯하고

나는 그들을 알 듯 말 듯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들

이승에서 거꾸로 가고 있는 듯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황혼의 바다 홀로 목관 쓰고

아득히 썰물과 밀물의 경계에서

눈에 피어나던 동백

앙상한 가슴뼈 사이로 바람 불어온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외딴섬 낯선 고인돌에 누워

(기억하나요)

텅 빈 가슴에 균열 깊어

명치 찌르는 파편들 온몸으로 진동한다

흘러가는 구름집은 나만의 것

꽃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어둠 펼쳐 놓고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지는 것들

봄날의 약속 어기고 실성한 머리에

바람꽃 피었다

폐부 말리는 바람 밀려올 때면

젊은 나의 아버지 허물로 서서

금빛 아침 쪼아 먹는데

내 곁 떠난 그들의 속도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움 뼛골 검어지던 날

초록뱀 한 마리 나를 벗어 놓고

조용조용 사라진다



2019. 푸른 시간에 갇혀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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