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고택 인흥마을 / 박동미
신라 시대부터 아름다운 동산이라는 뜻의 화원 동산은 우거진 숲을 자랑하며 오랜 시간 시민의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 사랑 받고 있다. 그 옆으로 낙동강 끼고 여름이면 화원유원지 모래사장에서 모래찜질하느라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였다. 찜통더위에 빈 수박껍질 머리에 쓰고 온몸을 모래로 덮어 얼굴만 쏙쏙 내놓은 모습은 빛바랜 추억이 되었다. 그 넓은 은빛 모래사장도 사라지고 강물 위를 유유히 노를 저어 가던 뱃사공도 사문진교가 생겨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지고 잊히는 것이 한둘이겠는가, 변화 속에서도 가문의 뿌리를 꿋꿋이 지켜가는 우리 고장의 자랑, 인흥마을 남편 문 씨 세 거지를 찾았다.
인흥마을은 달성 2번 버스를 타고 본리리 종점에 내리면 아름다운 고택 문 씨 세 거지가 눈앞에 보인다. 옛날 양반들의 생활 주거 환경을 통해 선조의 청빈한 삶 엿보는 기회가 되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우리 것을 보존하고 지켜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어야겠다. 내가 어릴 때는 인흥 골짜기로 불릴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흙 담장에 고개 내민 능소화가 구수한 입담을 나눌 때 이른 가을 코스모스가 우리를 반긴다. 과거 속으로 들어간 듯 흙담 길 따라 마을 한 바퀴 돌고 나니 고향에 온 듯 마음이 편안하다. 인흥마을은 비록 몇 가구밖에 안 되는 마을이지만 비어 있는 집이 거의 없다.
인흥 마을은 한세월 뚝 잘라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다. 처음 집 지을 때부터 밭을 나누듯 정전법으로 길 닦아 세운 "계획도시". 그래서 마을이 흐트러짐 없이 단아하고 골목길이 반듯하다. 집집이 사랑채, 안채, 행랑채 등 4~6동의 건물이 있다. 마을의 교육기관이었던 광거당(廣居堂), 손님 맞는 인흥마을은 위풍당당한 고택과 돌담길이 정겹게 한 폭의 그림처럼 동네를 에워싸고 있고 인흥사 있던 자리에 터를 잡아 남평문씨 후손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토담으로 둘러싸인 부지 안에 와가가 들어서 있고 단아한 돌담길을 걷다 보면 대문 앞에 소담스럽게 핀 접시꽃과 나리꽃, 베개 섶에 수놓았으면 좋겠다.
이승의 한때도 저물어 옛 주인은 어디 가고 늙은 노송이 기풍 있게 굽어보고 있다. 흑백 사진 속의 옛 정취에 젖어 보는 인흥마을, 돌아갈 과거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시대를 넘어 광거당 안으로 들어가면 솟을대문 옆의 작은 문의 거북이형 빗장을 장식한 나무문이 있다. 장수와 수호를 상징하며 거북의 모양 따서 만든 빗장은 음양의 조화를 맞춘 조상의 지혜로운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대문이다. 남평문씨 세 거지는 대가족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고, 사랑채, 안채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고 집집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
헛 담은 광거당 건축의 완성이다. 흙으로 쌓다가 중간에 기와로 꽃 모양을 만들어 어느 예술 작품보다 소박한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담벼락 왼편으로 행랑채와 장독대가 있다. 장독대는 담장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다시 기와로 키 작은 둘레 담을 쳐 놓아 옛 여인들의 장독대를 엿보는 듯 항아리 가득 야문 손길이 느껴지고 처마 아래 나직나직 둘러앉아 있는 굴뚝은 어머니 밥 짓는 소리 들리는 듯 공고하다
모시옷에 풀 먹여 다듬이 소리 요란하던 대청마루와 허리 휘어질 듯, 빨랫줄의 바지랑대 고요히 햇살 머금고 있었다. 우물과 장독은 여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장소다. 예전에는 장맛을 소중히 여겼다. 햇살 온기 담아내는 우리의 장맛, 집안이 기울면 장맛이 먼저 간다고 여인들이 공들이며 지키던 장독대도 점점 사라지고 어린 시절 샘 안에 귀한 오이 넣어 보관하면 어머니 몰래 오이 건져 먹으려고 두레박과 씨름하던 아련한 시간이 더 그리운 것은 왜일까?
노송은 한옥의 품격과 멋스러움 더해 주고 굴뚝의 모습은 예스러움과 정겨움으로 다가온다. 광거당은 풍광이 아름다워서 영화 촬영 장소로도 많이 쓰였다. 강수연의 '씨받이", 장미희의 "황진이'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광거당 회화나무가 떨군 연푸른 꽃잎이 운치를 더해준다. 광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전통 목조건물로 평가 받고 있는 '수백당' 은 세 거지 입구에 있는 정자로 '수봉정사' 로 불리며 주로 손님 맞고 일족의 모임 열 때 사용하던 큰 규모의 건물이다. 툇마루에 앉으면 발이 기단에 닿지 않을 정도로 높다. 문풍지에 달빛 소복이 내리는 밤, 할머니의 옛날이야기가 아룽아룽 들리는 듯하다.
인수문고는 2만여 권의 국내외 귀중한 전적 문건들을 수장하고 있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문중 문고이다. 1980년도 초서고를 새로 지으면서 명실공히 민간의 대표적인 문고로 자리 잡았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고서를 보관 중이다. 낡고 오래된 낡은 목관에 새겨져 있는 글이 세월을 이야기해 주는 듯. 인흥마을의 또 다른 자랑거리다. 그 시절에 이런 문고를 갖고 있다면 권세가 어떤지 짐작이 된다. 유형문화재 제37호인 명심보감 목관이 보관되어 있다.
문중 자제들의 배움터이자 학문 논하는 곳으로 아름다운 정원 자랑하며 방문객 맞이하는 수봉정사, 1936년에 수봉선생을 가리기 위해 지었다고 하는데 시골 마을에서 이런 건물 지었다면 마을 조성 당시 문중의 경제력과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목화솜을 붓 뚜껑 속에 숨겨 들어온 문익점의 후손으로 건축연대는 200여 년 되었지만, 전통적인 영남지방 양반 가옥의 틀을 지키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솟을대문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잘생긴 소나무와 붉은 꽃망울 터뜨린 배롱나무가 눈길 끈다. 전통가옥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엿볼 수 있고, 흙과 돌로 정성스레 만든 토담은 마을 전체를 연결하고 있으며 토담 길 따라 여유롭게 걷다 보면 닳아서 빛나는 건 무늬만이 아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아득한 길, 한 가문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기둥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고택 청마루가 반질반질하게 닦여져 윤이 난다. 담장에 흐트러져 피어 있는 능소화가 점점 잊혀 가는 옛것에 대한 애틋함으로 애잔하다.
제 3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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