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작품

2015. 메주 [대구문학 117호]

맑은향기 1 2018. 9. 15. 00:08

메주 / 박동미

 

 

 

!

 

해풍에 알몸을 묻었다

돌아보면 아득한 길

해는 아직 중천인데

눈을 가린 채

그의 잠으로 들어가 몸을 풀었다

누군가의 손길 기다리다

해질 무렵 알몸이 잠시 흔들렸다.

흥건하게 풀어놓은 붉은 햇덩이

먼 데서 아랫도리 치는 소리 들린다

고된 삶에 지쳐 돌아누운 채

발가벗고도 부끄러움 몰랐던

풋풋한 시절,

별이 총총 내려와

하릴없이 쾅쾅 가슴을 친다.

 

사랑은 몸을 부수는 일이다

한 끼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몸을 데우며

낯선 사람들에게 말을 걸었던

유년의 어느 날

융숭했던 대궐 집의 권세를 말해주던

장독에서

고독한 어깨의 웃음소리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