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작품

2008 시와반시 [가을 서가]

맑은향기 1 2018. 8. 29. 01:33

숲으로 오라 / 박금선

그대 슬픈 이야기 만나
코끝 시큰히 저려 오는 날 있거든
숲으로 오라
이 세상 살아가는 일
울컥 분노에 뒤척일 때도
여기 푸르게 우거진 숲으로 오라
바람에 흔들려도
제 자리에 든든히 뿌리내린 나무
십수 년을 지켜온 침묵 속으로
그늘 한 자락 베고 누우면
가슴을 서늘케 씻어주는 숲의 나라
초록빛 물소리
북적이는 도심의 하루
인파 속에서 되려 적막해지는 날도
이 풍성한 숲으로 오라
숲속은 언제나 푼푼한 빈터를 열고
그대 쉬고 살찌게 하리
산새들 그대 위해 노래 부르고
나는 숲속의 이름 없는 잡초되어
그대를 반기리니
외롭고 그리운 날 언제라도
그대여! 내 머무는 숲으로 오라

불꽃처럼 펄럭이는 일상에서 숲은 존재의 집이며, 영혼의 그림자로 함께 하는 좋은 친구이다. 새삼스레 행복해지려고 한다. 남들이 쉽게 넘 볼 수 없는 삶의 철학이 있고, 누구도 삶을 대신 살아 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인간 관계에서의 권태는 자신의 삶이 녹슬지 않게 거룩한 일상, 침묵의 여과기를 거치면서 스스로 스승이 된다. 박금선 시인은 어디에도 물들지 않고 단순함으로 씨앗처럼 자라는 말, 자신만의 언어를 갖고 있는 시인이다. 내면의 바다를 찾아 떠나고 싶을 때, 숲 속으로 오면 단절된 자기 수양과 삶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진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따뜻한 가슴을 잃어 가기 때문이다. 부끄럽지 않는 내 삶이 궁금하다.--박동미(시인)

{2008 시와반시 가을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