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서 / 박동미
마음 다 비우고 싶은 날
조용한 산사를 찾는다
솔 향기 사이로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 들으면 어느새 가벼워지는 마음
바람의 눈높이까지 욕심 내려놓고
세상 바라본다
분별없는 생각들
하늘빛 말씀 살짝 들추어
내가 나를 비워내면
세상은 세상일이라서
못 견뎌 하고 홀로 아픈 등 밀고 가는
그림자 닮지 않아도 되리라
어두운 그늘 한 자락 꿀꺽거리다 보면
허둥대는 하루는 빛을 잃어가고
중생이 밟고 간 발자국 바라보며
마음 어디 두어야 할지
노을처럼 저무는 하늘
사랑도 해보고 자식도 길러
어쩌지 못하고 가야 한다면
바라보는 침묵으로 순응해야지
마주 보고야 말 세상에서
우리가 맞고 있는 현실적인 삶은 이상적인 삶과는 늘 대칭을 이루고 있다.
일상을 이루고 있는 인간 행위의 대부분은 "목적" 이 아닌 "수단" 혹은 " 방법"을
위한 봉사다. 다시 말해 "이상" 혹은 궁극적 " 목적"을 위한 한 행위는
현실에서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익숙해 있다. 아니 이제 그 가치가
전도되어 삶의 "수단" 혹은 "방법"에 불과한 것이 궁극적인 "목적" "이상" 실현인 양 착각하고
그것을 위해 혼신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생활인들이다. 대표적인 예가 "돈'을 위한
현대인의 끓임 없는 집념일 것이다. 어떤 삶에 회의를 느낄 때 사람은 산사를 찾는다.
산사는 일단 속세와 거리를 두고 있다. 이런 공간적 배경과 집념, 욕심을 버림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종교적 이념이 결합한 산사는 사람에게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가장 적합한 장소일
것이다. 박동미는 산사를 찾아 "바람의 눈높이까지 욕심 내려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진다.
이 때 "세상은 속세일 수 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시선이 멈추는 곳은 바로 "나"일 것이다.
분별없는 생각들
하늘빛 말씀 살짝 들추어
내가 나를 비워내면
세상은 세상일이라서
못 견뎌하고 홀로 아픈 등 밀고 가는
그림자 닮지 않아도 되리라
ㅡ [ 산사에서 ] 부분 ㅡ
박동미 시인은 산사에서 "나를 비워내"는 일에 열중한다. "나를" 비워내는 일의 핵심은 지금까지
"분별" 없는 생각"으로 살던 삶에 대한 반성과 "하늘빛 말씀 살짝 둘추"는 것이다.
그러면 박동미 시인은 "세상은 세상일이라서 / 못 겨뎌하고 홀로 아픈 등 밀고 가는 / 그림자 닮지 않아도"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다시 말해 "세상일"은 "세상일이라서 못 견뎌하던" 집념.
"나"의 "일" 은 그 일대로 "홀로 아픈 등 밀고 가"야 하는 욕망으로 가득한 "그림자" 같은 허무한 삶에 대한
반성이 이 시의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지만 현대인은 현실적인 삶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이 점을 박동미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시 말미에 " 노을처럼 저무는 하늘/ 사랑도 해보고 자식도 길러/ 어쩌지 못하고 가야 한다면 /
바라보는 침묵으로 순응해야지" 라고 노래한다. 어쩌면 "산사"를 거닐며 결국 세상 초월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깨달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순응의 아름다움을 깨달아 가는 나이가 되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박동미 시인은 이런 " 순응의 아름다움도 창조적일 수 있음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다.
구석본( 시인.대구문인협회 회장)
*197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지상의 그리운 섬> < 노을 앞에 서면 땅끝이 보인다>< 쓸쓸함에 관해서>
* 저서 < 詩여 다시 그리움으로 >
* 현 대구문협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