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작품

2017. 보리밭 [대구문학 7,8 .127호]

맑은향기 1 2018. 9. 6. 17:17

 

보리밭 / 박동미

 

 

 

 

푸른 보리밭에 젖은 맨발을 밀어 넣고

환장하게 가렵고 차진 몸으로

여름 별자리 근처 바람끼리 비비며 운다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눈 질끈 감은 황톳길 

구름의 능선이 무릎에 누웠다.

멍석 흔드는 소리에
가난한 여름이 보리술에 취한다.

탯줄을 감고 있는 콩잎이 싹을 틔우며 

죄수 같은 푸른 들판에 순례를 마치고

세월도 없는 듯 앉아 있다. 

고즈넉한 생, 

꼿꼿이 세우던 등뼈의 힘으로

아버지의 갈라진 뒤꿈치가 길을 따라간다

얼마나 많은 날 몸부림쳤던가? 

거멓게 속이 타들어 가면서

아버지의 날개 죽지가 낙관으로 찍혀 있다

연둣빛 풀 하나가 똥 한 무더기 누고는

호박잎 촘촘히 뒤를 닦고 갔다. 

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 땅을 파던 아버지

달빛 환하게 당신 얼굴이 겹쳐 보여

머쓱해서 주먹을 허공에 쑥 내밀었다.